2021.11.11 (목)

학생칼럼

조선의 중심, '경복궁'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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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총 5개이다. 조선의 왕들은 때에 따라 각기 다른 궁궐에서 머물렀는데, 그 중 경복궁은 조선과 그 시작을 함께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런 경복궁의 역사와 그 내부 전각들에 대해 알아보자!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이었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 정도전은 경복궁 설계과정에서, 자신의 민본주의 사상, 즉 백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함께 녹여냈다. 그래서 경복궁 전각의 이름들은 대개 '왕으로서의 책임'을 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시로 '깊이 생각하며 정치하라'라는 뜻을 가진 사정전이 있다.

 

 조선의 법궁으로서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는 경복궁은 모진 풍파를 겪은 후, 비로소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버린 경복궁을 흥선대원군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중건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흥선 대원군은, 국내 경제를 어지럽혔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경복궁은 일제 강점기 때에도 일제의 만행으로 심하게 파손 되었지만, 광복 후 보수를 거친 후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되었다.

 

 ▲근정전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라는 뜻의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전각이다. 근정전에서는 국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접대 등... 수 많은 국가적 의식이 거행되었다.

 

 

 근정전 앞뜰을 비롯한 경복궁의 바닥은 대체로 울퉁불퉁한데, 이는 신하들이 국왕을 보러 갈 때 경거망동하지 않고 발걸음을 조심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매끈한 바닥 표면에 국왕의 얼굴, 즉 용안이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근정전 앞에는 '품계석'이라는 비석들이 있는데, 품계석은 말 그대로 관리들의 품계를 나타낸 비석이다. 근정전에서 의식이 거행될 때, 관리들은 자신의 품계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서서 의식을  참여해야 했다고 한다.

 

 근정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복궁 전각 지붕에는 '잡상'이라고 불리는 조각상이 있다. 잡상은 전각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잡상이 많을수록 중요한 전각이다. 근정전의 잡상은 처음 지어졌을 때는 10개 이상이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파손되어 현재는 7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근정전에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드므'라고 불리는 큰 독들을 볼 수 있다. '드므'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물이 담긴 독이다. 그러나 실제로 드므의 물을 이용해 불을 끈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불을 일으키는 도깨비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는 상징적 의미에 가까웠다.

 

 ▲강녕전

 

 유교의 다섯 가지 복 중 하나인 '강녕'의 명칭을 딴 강녕전은 왕의 일상생활 공간이었다. 강녕전은 특이하게 다른 전각들과 달리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 조선의 용인 왕이 거주하는 곳이므로, 또다른 용인 '용마루'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녕전은 국왕의 거처였던 만큼 안전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자객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에는 가구를 들이지 않았고, 내부는 우물 정 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방이 서로 다른 방으로 둘러싸인 곳의 가운데 방에서만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교태전

 

 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교태전'은 왕비의 처소였다. 교태전도 강녕전과 동일한 이유로 용마루가 없으며, 교태전에는 왕비가 아이를 낳을 때 사용되는 '산실청'이 딸려 있다. 또한,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이라는 큰 정원이 있어서, 궐 밖을 나가지 못하는 왕비의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아미산에는 조선 궁궐에서 가장 아름다운 굴뚝이라는 평가를 받는 굴뚝이 있는데, 이 아미산 굴뚝에는 모란, 국화, 매화, 박쥐, 불가사리 등...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문양들은 모두 조선 왕실의 안녕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봉황과 부귀를 의미하는 매화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경회루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으로 손꼽히는 경회루는 국왕이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할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경회루에는 독특한 우주관이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기둥이다. 경회루의 바깥쪽 기둥은 사각형 모양이고 안쪽 기둥은 원 모양인데,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흥청망청'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곳도 바로 이 곳 경회루이다. 연산군 때 전국의 뛰어난 기생들을 모아 '흥청'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연산군이 온종일 경회루에서 흥청들을 끼고 국정을 돌보지 않아서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의미로 '흥청망청'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복궁은 조선의 얼과 혼이 스며들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7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조선의 법궁으로써 묵묵히 버티고 견뎌 온 경복궁을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우리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